계앙산 산천제
『계양산 산천제』의 기원과 유래에관하여
계양은 고구려와 통일신라 시대때 사람이 살았던 역사 깊은 곳이다. 고구려 주부토군,
통일신라시대 장제군, 고려 때엔 수주, 안남도호부로 변천되었다가 서기 1215년 계양도호부로 된 것이며,
서기 1308년에는 길주목으로 승격하였습니다. 1310년 길주목이 폐지되고 부평부란 명칭이 붙혀져 내려오다
1995년 지금의 명칭인 계양구가 북구에서 분구가 되면서 붙혀진 것으로 볼 때 변천사가 많습니다.
계양산 제례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1000여년의 긴 세월 아니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를 모은 것이 산신제로서 사직의 제례
즉 땅의 신과 곡식의 신께 올리는 제사로서 사직은 곧 국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직대제는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안녕을 위하여 지내오던 전통적 풍습입니다.
계양산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우리 선조들께서도
계양산 신령과 계양산 할머니 신령께 고하기를,
"자연이 만든 작품, 높은 산과 활기찬 기상,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정신,
허물었다가 다시 쌓는듯한 산기슭의 수려함에 신령과 성현이 내려오셔 노닐고
가신듯한 곳, 진정 우리 계양구의 터전이요,
우리 마음에 안식처란 뜻과 병품같이 둘러서 줄기로 눈비가 오거나 추위가
닥쳐도 오직 우리는 이 산을 의지하고 이 산을 우러러 보며 농업과
상업 모든 직업에 종사하며 빈부에 관계없이 편안히 업을
영위하니 이 모두가 산신령님과 산 할머니의 복록이며,
이 곳에 큰 인물이 나고 인구가 번창함도 산신령님과 산 할머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상 축문 내용) 이것을 지켜 온 부평리 하리 즉 아랫마을 리중계첩과 같이
산신제 축문과 제사진행 순서인 홀기가 기록된 것이
광무 5년 계축년 1일 근서란 기록물에 보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