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읽고 함양으로의 겨울 여행
<책산책-겨울 여행>
-내용: 박경리 토지 읽고 관련된 지역으로의 여행
-날짜: 2019년 2월 20(수)~21(목)
-참가자: 깨강정, 꾀꼬리, 채송화, 박넝쿨
-장소: 함양, 지리산 둘레길 걷기, 실상사
인천녹색연합 책 산책 모임은 토지를 읽고
토지와 관련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
2019년 3월 20~21일 함양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함양을 거쳐 창원리마을에서 하루밤 묵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
7시13분영등포에서 itx를 대전으로 가서 대전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대전에서 함양으로 가는 고속버스는 쉬지 않고 바로 가는 버스다
생각보다 버스의 교통이 편리하게 되어 있다.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함양에서 점심식를 하고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해 왔을때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은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는데 너무 멋진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함양읍에서 청원마을로 가는 버스 타면 1시간 20분 택시를 타면 20분 걸리다는 택시기사의 말에 우린 택시를 타고 청원리 민박집으로 왔다. 전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하셨다는 김석봉님댁이다. 주인가족들이 모두 친절하다.
마을에서 출발하면 지리산 둘레길 코스가 있다고 한다. 우린 지리산 둘레길 코스를 걷기로 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리산 둘레길은 자연상태를 그대로 볼수 있는 좋은 길이다.
소나무가 바람에 부러져 있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대로 둔다.
크고 건강한 소나무가 한순간 줄기가 부러져 쓰러져 있다. 인간이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다.
그냥두는수 밖에 ...
둘레길이 생각보다 길다. 이럴줄 알았으면 간식을 좀 챙겨오는 건데 ... 이렇게 길줄 몰랐다.
금계 마을로 내려와서 창원마을로 오는 길은 오르막 길이라 더 힘들다.
평소 체력이 되는 사람을 괜찮은데 자주 걷지 않는 사람은 무리인것 같다.
석봉아저씨네 민박집 저녁은 진수 성찬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자연의 향이 가득한 기른 채소로 저녁 상을 차려 놓았다.
뷔페로 ~~ 배고 고프고 맛있는 저녁상에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함양에서 사간 막걸리는
함양막걸기와 생탁 막걸리다. 석봉아저씨가 보시고 생택막걸리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막걸리 회사란다.
그말을 듣고 보니 생탁 막걸리가 먹기 싫어졌다. 우리 따지도 않았다.
새벽 5시에 나오다 보니 모두 피곤하다. 그래도 꾀꼬리 샘이 카드를 가지고 와서 함께 카드놀이를 했는데
그림이 같은 것을 맞춰서 가져 가는 것이다. 채송화와 꾀꼬리샘은 참 잘 한다. 난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2가지 카드 놀이를 하고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박경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석봉 아저씨네 개가 우리가 어디가는지 알고 길 안내를 한다.
개와 함께 동네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갔다. 멋진 소나무들이다. 가지를 구불 구불 마치 지렁이들이 하늘에서 노니는것 같다.
평소에 잘 걷지 않고 사는 도시인들에게 긴시간 둘레길을 걷는것은 무리다. 어제 새벽에 일어나 주부가 이틀동안 빈 공간을 가족들 불편하지 않게
준비하고 나온다는것이 쉽지 않다. 첫쨋날의 3시간 둘레길걷기는 다음날 어떻게 할지 결정하게 한다. 민박집 안주인이 남원실상사를 추천 하셔서
우린 실상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실상사는 남북국시대 신라 흥덕왕3년 (828년) 증각대사(홍척국사)가 당나라에 유학했다가 귀국하여 세운 절이라고 전해진다.
절은 그 옛날 웅장했던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은 작고 아담한 절로 남아있다. 목조석탑사지가 남아 있는것을 보면 이 절이 얼마나 그 옛날 큰 절이었나를 알수 있다.
황룡사지 9층 석탑의 우리나라의 최고 목탑건물이라면 실상사의 목조석탑은 7층이라고 하니 대단한 절임을 알수 있다. 곳곳에 국보와 보물이 여러점 볼수 있었다.
남원실상사를 나와 공예품 가게에 들러 남원의 돌절구와 각종 공예품과 호두와 땅콩을 샀다.
다시 함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함양에서 점심을 먹고 대전으로 오는 고속버스를 타니 1시간 15분 정도 걸려 대전으로 왔다.
교통이 참 편리하다. 쉬지 않고 대전으로 직행 대전와서 성심당빵을 하나씩 사고 ktx 뒤로 앉는 의자에 앉고 서울역으로 왔다.
itx와 ktx 열차비는 7천원정도 밖에 나지 않는데 시간은 1시간 차이가 난다.
책산책을 시작한지가 5년차가 되었다. 처음으로 함께 가는 여행이다. 산지기님은 직장으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하시면서
후원금을 주셨다. 산지기님의 따뜻한 마음에 늘 감동을 받는다.
2달걸려 읽은 토지의 여운이 아직도 남는다. 토지를 통해 일제강점기때의 사회상을 보고 그 당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한다.
<함양 연혁>
삼국시대 중기까지 가야문화권에 속했으며,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 위치하고 팔량치와 같은 소백산맥을 넘는 교통로가 있어 7세기초에는 백제와 신라의 세력이 맞부딪쳤던 곳이었다. 신라는 이곳에 속함군(速含郡)을 설치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 천령군(天嶺郡)으로 개칭하고 이안현(利安縣 : 또는 安陰)·운봉현(雲峰縣)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초에 허주(許州)로 개칭하고, 995년(성종 14) 도단련사를 두었다가 1012년(현종 3) 함양군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 합천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초인 1395년(태조 4)에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고, 1466년(세조 12) 함양군이 되었다. 조선 후기인 1729년(영조 5)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 다시 함양군으로 강등되었다. 함양의 별호는 함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진주부 하동군, 1896년 경상남도 하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석복면·병곡면·마천면·백전면은 그대로, 북천면·원수면·관변면이 위성면으로, 덕곡면·지내면이 지곡면으로, 휴지면·엄천면이 휴천면으로, 유등면·예림면이 유림면으로, 도북면·모간면이 수동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이때 안의군(安義郡)이 폐지됨에 따라 서하면·서상면은 그대로, 현내면·황곡면·초참면이 안의면으로, 대대면·지대면이 대지면으로 통합되어 함양군으로 편입되었다. 1933년 위성면이 함양으로 개칭되고, 1957년에 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석복면이 편입되었다. 또한 대지면도 1933년에 안의면에 편입되었다. 1948년 여수순천10·19사건과 6·25전쟁으로 인해 지리산을 끼고 있는 이곳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1984년 군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동맥이 지나게 되었다. 1998년에 엄천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안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