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숲해설사전문과정

월미공원

박넝쿨 2018. 12. 10. 22:48

 

월미공원은 조선시대 한양을 지키는 군사기지였고 개항기에는 조선에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였다. 6.25전쟁 시에는 인천상륙작전 첫 상륙지점이었으며 그 후 50년 동안 군 부대가 주둔하다 2001년도에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쉬나무-학자나무

-석유가 들어오기전에는 들깨나 아주까리 기름등을 이용하여 불을 밝혔는데 특히 쉬나무는 아무데서난 잘 나라고 기름성분이 많은 열매를 가지고 있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이사를 갈 적에는 등불을 밝히기 위해 쉬나무 종자를 받드시 챙겼다는 유래가 있어 학자나무라고 불린다.

-옛 선비들은 집 근처에 쉬나무를 꼭 심었다. 주경야독이란 말이 있듯이 밤에 책을 읽으려면 불을 밝힐 기름은 필수였다. 하지만 석유가 들어오기 전, 등유는 동식물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다. 유채, 해바라기, 아주까리, 들깨를 비롯하여 목화씨에서 얻는 면실유 등 옛사람들이 이용한 등유는 초본식물에서 흔히 얻었다. 그러나 곡물을 생산해야 할 경작지에 심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쉬나무는 동백나무와 함께 산에 심어서 비교적 손쉽게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유지(油脂)자원이었다.

-쉬나무는 아무데서나 커다랗게 잘 자라고 기름 성분을 함유한 열매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동백나무, 때죽나무와 함께 중요한 기름으로 대접받았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호남 지방에서는 들깨 대신 쉬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켰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은 이사를 가면서 등불을 밝히기 위한 쉬나무와 학자수로 알려진 회화나무의 종자는 반드시 챙겨갔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페름기(23~27천만 년 전)에 초기 형태의 은행잎 모양이 알려질 만큼 일찍 지구상에 나타났다. 조금 늦추어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135~18천만 년 전) 이전부터 지구상에 삶의 터전을 잡아왔다. 대체로 중생대에 이르러서는 약 11종 정도로 번성하였으며, 백악기(65백만~135백만 년 전)에는 지금의 모양과 거의 같은 은행나무가 아시아, 유럽, 북미에서 자라고 있었다.그 후 지질학적인 대변동으로 제3기에 들어오면서 은행나무 일가는 지금의 은행나무만 남게 된다. 그나마 북미는 약 7백만 년 전, 유럽은 25십만 년 전쯤에 멸종되었고, 오늘날에는 극동아시아 대륙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그렇다고 은행나무가 처음 지구상에 출현할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의 냉엄한 현실에서 업그레이드를 소홀히했다가는 순식간에 영겁의 세계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태어날 당시는 지금과 같은 잎 모양이 아니고,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여러 개로 갈라져 있었다. 차츰 진화가 되면서 갈라진 잎들이 합쳐져 오늘날의 부채꼴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대체로 2~3억 년 전의 화석식물인 은행나무가 멸종되지 않고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환경 적응력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춥거나 덥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고,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나이가 수백 년에서 천 년이 넘는 고목 은행나무의 상당수는 원래의 줄기는 없어지고 새싹이 자라 둘러싼 새 줄기이다.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터페노이드(Terpenoid), 비로바라이드(Bilobalide) 등 항균성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병충해가 거의 없다. 열매는 익으면 육질의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Heptanoic acid)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고, 그 외에 긴코릭산(Ginkgolic acid) 등이 들어 있어서 피부염을 일으키므로 사람 이외에 새나 다른 동물들은 안에 든 씨를 발라먹을 엄두도 못 낸다. 씨앗을 먼 곳까지 보내는 것을 포기한 대신에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원천봉쇄한 셈이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은행나무 고목으로서 보호받고 있는 것만 해도 거의 800그루에 이른다. 이들 중 천연기념물 22그루, 시도기념물 28그루가 문화재 나무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이가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도 여러 그루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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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몽골, 중국, 대만이 원산지이다.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수령이 천 년 넘는 나무 60여 그루 중 25그루가 느티나무이다. 목재는 잘 썩지 않으며 물에 잘 견디어 농기구의 자루나 가구를 만들거나 건축재로 쓰인다. 요즘에는 분재용 식물로도 널리 가꾸고 있다.

-나지막한 동산을 뒤에 두르고 널찍한 들판을 내려다보는 곳, 시골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드리 고목나무 한 그루는 서정적인 우리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당산나무나 정자나무로 불리는 이런 나무의 대부분은 느티나무가 차지한다. 아늑한 품 안은 뙤약볕 여름농사에 지친 농민들의 안식처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여론광장이 되기도 한다.산림청의 지도 감독을 받아 각 지자체가 지정 및 관리를 하고 있는 고목나무는 현재 약 13천 그루쯤 되고, 그중에서 느티나무가 71백 그루로 가장 많다. 따라서 고목나무 하면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위로는 임금의 궁궐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활터전까지 심고 가꾸는데 낯가림이 없다. 모두를 다 함께 편안하게 보듬어주는 넉넉하고 편안한 나무다. 이처럼 아름드리 굵기에 이야깃거리가 얽혀 있는 느티나무라면 짧게는 조선왕조, 길게는 고려나 신라인과 삶을 함께 해온 역사 속의 나무다. 우리나라 나무 중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긴 나무다. 몇백 년은 보통이고 웬만하면 천 년이 훌쩍 넘어간다. 긴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맞닥뜨린 민족의 비극도, 애달픈 백성들의 사연도 모두 듣고 보아오면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전설을 간직한 느티나무는 수없이 많다.

-쓰임새가 너무 많은 느티나무는 당산 지킴이로서 만족할 수 없었다. 목재는 나뭇결이 곱고 황갈색의 색깔에 약간 윤이 나며, 썩거나 벌레가 먹는 일이 적은 데다 무늬도 아름답다. 또한 건조를 할 때 갈라지거나 비틀림이 적고 마찰이나 충격에 강하며 단단하다.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무의 황제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둥그스름한 당산나무만이 느티나무의 참모습은 아니다.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여 자랄 때는 곧바르고 우람한 덩치로 자란다. 그것도 적당히 자라다 마는 것이 아니라 키 20~30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까지 자란다.목재의 쓰임도 화려하다. 천마총을 비롯한 관재로서 임금의 시신을 감싸고 영생의 길을 함께한 영광의 나무였다. 건축재로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전, 조선시대 사찰건물인 강진 무위사, 부여 무량사, 구례 화엄사의 기둥은 전부, 혹은 일부가 느티나무다. 또 흔히 스님들이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 구시(절의 행사 때 쓰는 큰 나무 밥통), 절의 기둥, 나무 불상도 대부분 느티나무다. 기타 사방탁자, 뒤주, 장롱, 궤짝 등의 가구까지 느티나무의 사용범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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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나무질이 단단하면서 질기고 쉽게 썩지 않아 예부터 목재로 많이 사용해왔다.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많은 참나무가 출토되고 있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의하면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구황식물로서 임금이 직접 시식을 할 정도로 귀중하게 여겼다. 참나무는 화력이 좋고 더 오래 불씨를 유지하여 떌감용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죽은 참나무 줄기에서는 표고버섯이 자생하여 표고버섯과 영지버섯 등의 버섯 배지로 활용된다.

가을철 산에 오르다보면 재미 삼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자루를 들고 나선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참나무는 해마다 많은 양의 도토리를 만들어 낸다. 얼마나 많은가 하면 풍년인 해는 성숙한 참나무 한 그루에서 1만개가 넘는 도토리를 만들고 흉년인 해에도 최소 300~400개의 도토리를 만든다. 참나무는 왜 이렇게 많은 양의 열매를 만드는 것일까?

참나무가 만드는 도토리는 몸집이 통실해 바람을 타지도 못하고 나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도토리를 주로 먹는 다람쥐나 청설모는 도토리를 입에 물고 좁게는 수십m에서 수km까지 이동할 수 있고, 참나무가 자라는 곳보다 더 높은 고지대에도 간다. 이어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 도토리를 땅속에 묻는다. 그런데 다람쥐와 청설모는 머리가 나빠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람쥐나 청설모는 땅에 묻은 도토리의 95%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땅에 묻힌 도토리는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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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팔만대장경판을 만든 나무가 지금까지는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으나, 내가 현미경으로 재질을 분석해본 결과 약 64퍼센트가 산벚나무였다.각주1) 그 외에 돌배나무 14퍼센트, 거제수나무 9퍼센트, 층층나무 6퍼센트, 고로쇠나무 3퍼센트, 후박나무 2퍼센트, 사시나무 1퍼센트 순이었다.경판의 대부분을 산벚나무로 새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재질이 균일하고 비중이 0.6 전후로서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자 새김에 최적격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활용구, 조각재, 칠기의 골심재 등으로 두루 쓰였다. 둘째는 아무리 경판 새김에 좋은 나무라고 해도 깊고 높은 산 깊숙이 꼭꼭 숨어 있으면 그야말로 꿰지 않은 구슬인데, 산벚나무는 흔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나무껍질의 독특함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무와는 달리 산벚나무는 숨구멍이 가로로 배열되어 있어서 멀리서도 다른 나무와 쉽게 구별하여 찾아낼 수 있다. 팔만대장경을 새길 당시에는 나라의 땅덩어리가 온통 몽고군에게 유린당하고 있던 때였다. 대놓고 나무를 베어 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산벚나무는 몰래몰래 한 나무씩 베어 오기에 안성맞춤이었다.산벚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 20미터, 굵은 것은 지름이 두 아름에 이르기도 하는 큰 나무다. 잎은 달걀모양으로 어긋나기로 달리며, 가장자리의 톱니는 날카롭다. 꽃은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2~3개가 모여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의 많은 꽃이 잎과 거의 동시에 핀다. 열매는 둥글고 가운데에 굵은 씨앗이 하나씩 들어 있는 핵과(核果)이며, 5~6월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다른 이름은 버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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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나무

세 나무 모두 측백나무과에 속하며, 측백나무는 한국과 중국에서 많이 자라지만, 편백나무와 화백나무는 일본이 원산지이며, 1900년대 초반에 일본사람들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식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에 가보면 신사주변이나 공원주변에 있는 키가 큰 나무 들이 바로 편백나무이며,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도 심으려 하였으나 내한성이 떨어져서 주로 남부지방에 많이 식재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갔던 고흥이나 송광사 등 남쪽 지방에서 편백나무를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측백나무나 화백나무는 향나무 자라듯이 가지가 많이 자라는 것이 특징이지만,

편백나무는 줄기가 대나무처럼 곧게, 길게 자라나며 가지는 수평으로 자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편백나무는 가지가 주로 나무 위쪽에서 원추형으로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나무 아래쪽은 날씬한 상태가 됩니다.그래서 우리가 볼 때에도 편백나무 숲이 주욱죽 뻗어서 시원한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까?열매를 보면 편백은 마치 축구공처럼 생겼고 측백은 원추형을 하고 있어 구분이 쉽습니다.

소나무

-·솔나무·소오리나무·(송목(松木송수(松樹적송(赤松육송(陸松) 등으로 부르며 송유송(松油松여송(女松자송(雌松청송(靑松) 등으로도 일컫는다. 높고 굵게 크는 나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큰 몸집을 가지는데 큰 것은 높이가 50m에 달한다. 또한 소나무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 사는 나무로서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의 하나로 삼았다. 이처럼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로 온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몇 년 전 산림청이 한국갤럽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물어본 결과 절반에 가까운 46퍼센트가 소나무라고 답했다. 뒤이어 2위를 차지한 은행나무는 8퍼센트에 그쳤다

-소나무의 또 다른 귀중한 쓰임새는 구황식물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풀뿌리의 대표는 칡이며, 나무껍질의 대표는 소나무다. 배고픔을 참을 수 없으면 소나무 속껍질, 즉 송기(松肌)를 벗겨 먹었다. 그러나 섬유질만 많을 뿐 실제로 영양분은 얼마 들어 있지 않다. 우리는 가난을 표현할 때 흔히 똥구멍이 찢어지게라는 표현을 잘 쓴다. 이 말은 소나무 껍질을 먹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여 변비가 생기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소나무와의 인연은 3~4천 년 전 선조들이 한반도 안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주로 참나무로 이루어진 주변의 숲을 개간하고 연료로 쓰면서 소나무는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직접 햇빛을 많이 받아야만 살아남는 소나무는 사람들이 개발을 위해 울창한 숲을 파괴하거나, 산불로 인해 다른 나무가 다 타버려 공간이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 크고 작은 인간들의 다툼과 대규모 전쟁으로 한반도의 숲이 파괴되면서 소나무는 반대로 자신의 터전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오늘날 구릉지가 많은 서해안 일대가 동해안보다 소나무가 더 많은 것은 평양, 개성, 서울, 부여, 나주 등 고대국가의 중심지가 대부분 한반도 서쪽이었던 것과도 관계가 깊다.역사 흐름에 따라 차츰 세력을 넓혀 가던 한반도의 소나무가 최고의 나무로 자리를 잡은 것은 조선왕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소나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최근 각종 건설공사나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출토되는 나무를 분석해보면 고려시대 이전에는 소나무의 비율이 4~6퍼센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권력자의 관재는 느티나무나 참나무 및 금송이나 넓은잎삼나무 등 수입나무가 대부분이고, 소나무로 만든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시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나 참나무를 더 많이 썼다. 몽고란 이후 사회적인 혼란을 거쳐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 숲은 더욱더 소나무가 많아지고 주위에 쓸 만한 나무는 소나무밖에 남지 않았다.조선왕조는 소나무 왕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나무를 숭상했다. 관청이나 양반의 집을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으며, 배를 만들거나 임금의 관재에도 꼭 사용되었다. 이를 위하여 전국에 소나무가 잘 자라는 2백여 곳에 봉산(封山)을 설치하여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엄격한 소나무 보호 정책을 썼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숲은 점점 더 황폐화되어 버렸다.

-오늘날 소나무가 우리 산의 가장 흔한 나무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역사적인 이유도 있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영리함이 있어서다. 햇빛만 풍족하면 척박한 땅과 건조함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돌무더기나 바위틈에서도 자람을 이어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다. 소나무의 영리함이란 종족번식의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핀다. 남매끼리의 수정은 자손의 형질을 점점 나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소나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암꽃은 꼭대기 근처에, 수꽃은 아래 나뭇가지에 피도록 설계했다. 풍매화인 소나무 꽃가루가 바람에 날아가 위로 올라갈 일은 거의 없으니 남매 수정이 안 되도록 일차적인 안전조치는 한 셈이다. 회오리바람 등 공기의 상하 이동도 드물게 있다는 사실을 배려하여 암수 꽃이 피는 시기를 약 일주일 정도 차이를 두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남매 수정 불가라는 원칙만 고수하다 엄혹한 자연계에서 자칫 자손이 아예 생기지 못하는 불행이 생길까봐 5퍼센트 전후는 수꽃이 위로 가고 암꽃이 아래로 내려와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이 정도면 소나무가 영리하다고 해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 같다.

생태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겨울이 오면 일부 동물들이 추위와 식량부족이라는 이중고를 해결하기 위해 겨울잠을 잔다. 잠은 혹한기를 견뎌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므로 식물도 겨울잠을 월동전략으로 채택한다. 첫 추위가 찾아오면 낙엽수는 잎을 떨어뜨리고 긴 겨울잠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잎은 매우 연약하여 겨울 내내 추위에 노출될 경우 동사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식물학에서는 이같은 주기적 수면상태를 식물성 휴면이라고 부르는데 동물학에서 말하는 동면과 100%동일한 개념이다. 식물은 눈을 감고 대사활동은 늦춘 상태에서 겨울을 넘기고 봄이 되면 활동을 제게 한다, 새싹이 트고 새로운 잎이 돋아나면서 식물은 감았던 눈을 뜨게 된다.

 

P69 5.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있을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식물과 인간 중 누가 더 중요할까? 판단하기 어렵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주겠다. 식물 또는 인간이 사라지면 각각의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만약 식물이 내일 당장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은 몇 주 길어야 몇 달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모든 고등생물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후 식물등이 인간의 거주지를 접수할 것이며 1세기 안에 모든 문명이 식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식물과 인간 중 누가 더 중요한지 판가름 난 것이 아닌가?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의 무게를 100그램이라면 식물의 무게는 99.5~99.9그램이나 나가는 셈이다. 거꾸로 말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무게를 다 합해도 0.1그램에서 0.5그램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있지만 식물은 여전히 생명체의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지구상에 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식물덕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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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따뜻한 내복과 외투 그리고 장갑과 목도리 등을 준비를 하는데 그럼 동물과 식물들은 어떻게 겨울을 준비할까?

겨울철 동 식물들의 쉼은 단지 휴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듬해를 준비한다.

특히 추운겨울 식물은 열매(씨앗) 속에 생명력을 강하게 응축시켜 이듬해 봄이 오면 활발한 생명활동을 하도록 한다. 추위 속에 약한 생명은 죽을 수도 있고 살아남은 생명은 더욱 강한 힘으로 자신과 후손을 위한 한해살이를 시작한다.

 

나무의 겨울나기

나무에게는 겨울눈은 일년 삶을 좌우한다. 그래서 나무는 겨울눈이 겨울을 잘 지내도록 최선을 다해 보호한다. 겨울에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자세히 보면 겨울눈(나무가 여러해살이풀이 겨울을 지내기 위해 만드는 것으로 잎이 떨어진 자리에 난다.)을 볼 수 있다, 나무는 겨울눈으로 겨울나기를 한다. 겨울눈의 모양이 사람의 지문처럼 나무마다 다르지만 거의 모든 겨울눈는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단단한 비늘잎으로 겹겹이 덮여 있거나 포근한 솜털로 싸여 있거나 끈끈한 진액으로 둘러 싸여 있다. 나무의 겨울눈은 대개 늦여름에 만들어 지는데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에 잘 드러나기 때문에 겨울눈이라고 부른다.

겨울눈은 어떻게 구별할까? 나뭇가지에 끝에 붙어 있는 겨울눈은 끝눈. 나뭇가지 곁에 붙어 있는 것은 겨울눈을 곁눈이라고 한다. 또 겨울눈은 앞으로 무엇이 될지에 따라 꽃이 될 꽃눈과 잎이나 줄기가 될 잎눈 잎과 꽃이 같이 나올 섞인 눈을 나눌 수 있다. 나무껍질에 잘 드러나는 겨울눈이 있고 잎자루 속이나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묻힌눈도 있다. 그리고 겨우내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수도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겨울눈을 달도 있다.

 

 

2) 식물들의 겨울나기 전략

식물들은 겨울에는 광합성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추위 때문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울 수 없으니 꾀를 내어 겨울을 지낸다, 식물들은 겨울나기 전략은 무엇일까?

식물은 풀의 경우 땅위 잎이 마르거나 나무의 경우 잎을 모두 떨어뜨리어 광합성작용을 중단함으로서 겨울잠을 잔다. 상록성의 경우는 최소한 광합성을 통해 성장을 더디 함으로서 겨울잠을 잔다고 할수 있겠다.

 

7. 돌아봄의 계절에 나는 무엇을 돌아볼것인가?

겨울철 낙엽을 떨어뜨려 새 생명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맨 몸으로 찬 겨울앞에 당당히 서서 자기를 온전히 들어내고 있는 나무 삶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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