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계양큐레이터교육

인천의 변천과정

박넝쿨 2017. 6. 28. 09:56

인천의 지명 변천과정

미추홀(, 바탕, 비류백제)

매소홀(거친물의 땅,백제,고구려,신라)

소성현(문학산성, 신라.경덕왕)

경원군-(경사난 지역의 근원지) 고려 숙종10(1105~고려 인종241145) 40

-고려시대(인주이씨는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80(1047~1126)동안 정권을을 장악하고 왕실과 중첩되는 혼인관계을 맺음으로서 당시 고려왕실의 왕자, 궁주 가운데 인주 이씨의 외손 또는 생질이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인주 이씨는 외척으로서 권세와 벌족으로서의 지위를 굳혔고 이 7대 동안 인천의 왕과 외향 이거나 왕비의 내향이었기 때문에 경원(慶源근원원)이라 하였고 또 ‘7대 어향(7(다스리다)(마을)이라고 하였다)

인주(큰 고을) 고려 인조조(1146~고려 공양왕2) 1390(순덕왕후 친정고을)

경원부-공양왕 2(1390)~조선태조 원년(1392)-고려 마지막공양왕의 태자비을 인주이씨가문에서 맞아들임

인주로 환원(조선조 태조 원년1392)- 이성계가 조선국을 세우고 고려는 멸망되고 높혀 놓았던 경원부를 격하하여 인주로 환원

인천군-태종 원년(1413)~세조 6(1460)

-고려시대 왕족과 자주 인척을 맺어온 인천이씨의 덕분에 대우를 받아온 인천고을은 조선조에 와서 멸시되어 그 영역은 점차 줄어 소성시대로 환원되고 격하되어군 으로 전락되고 인주 란 이름도 주에서 세획을 떼고 인천이 되었다.